💡 Insight

종교는 음악과 경전이라는 두 기둥을 통해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발전시켜왔으며, 현대 문화는 이러한 상상력을 수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상상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 Knowledge Map

  1. 종교의 두 기둥

    • 음악: 감성의 발전
    • 경전: 이성의 발전
  2. 인간의 원초적 심리

    • 경험과 이해의 상상적 표현
    • 기대와 실망의 순환
  3. 현대 방송 문화

    • 상상력의 충족
    • 연예인과 방송인의 역할
  4. 상상력의 변화

    • 능동적 상상에서 수동적 소비로의 전환
    • 현대인의 기대: 완전한 모습의 목회자와 예배
  5. 예배의 현대적 접근

    • 대형 교회의 예배 방식
    • 수동적 기대와 상상력의 결여

이 텍스트는 종교의 본질과 현대 문화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상상력과 기대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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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종교에는 음악과 경전이라는 두 기둥이 있었지요. 종교의 음악은 인간의 감성에 기반을 둔 것이고 경전은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둔 것이지요.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발전시켰고 경전은 인간의 이성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종교 음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경험해왔고 종교의 경전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해 왔습니다. 인류 초기에 경험과 이해는 주로 상상이라는 그림을 제시했었습니다. 이유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어떤 형상을 통해서 경험하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완전한 것을 상상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요.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까지는 상상력이란 원초적인 힘이 작용하지요. 처음엔 남자나 여자가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기대를 합니다. 배우자를 원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기대가 상상되면서 상상하던 것을 실제 사람에게 적용시키면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서 상상한다는 것은 서로 그리워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만나 사랑하게 되지요. 문제는 실재로 상대방을 만나서 결혼해서 살게 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그동안 상상해왔던 즉 기대해왔던 모습과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실망하게 되지요. 그렇다고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기대감 즉 상상력은 죽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상대가 기대하던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곧 다른 상대를 골라 자신의 기대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마치 여자가 남편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무너지면 그 기대감은 자기 자녀들에게로 옮겨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상상력, 즉 완전한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옮겨갈 뿐이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현대 방송 문화는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고 있는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충족시켜주는 사람들을 연예인이라고 하지요.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방송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가장 완전한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광고에 비친 사진들이 그러한 한 예이지요. 그 외에도 인간 내면에는 원초적으로 불의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 있지요. 방송인들은 드라마를 만들면서 이런 원초적인 본성을 화면 속에 투사시켜놓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화면에 드러난 장면들을 보면서 공감하게 됩니다. 이유는 자신들의 내면이 이미 그런 심성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현대인들은 화면 안에 드러나는 자극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방송인들이 만들어 놓은 장면에 익숙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능동적으로 상상하던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수동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TV나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 내면에 있는 것들을 이미 표출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애를 쓰며 상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옛날 기독교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부르면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지요. 문제는 현대 문화가 상상을 하도록 즉 묵상을 하도록 강조하는 문화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미 상상된 것 즉 만들어진 것을 기대하는 문화라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인간 내면에 있는 원초적인 갈증을 투사해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수동적인 현대인들이란 것입니다.

그 결과로 현대인들은 교회 안에서 이런 기대를 합니다. 목회자에 대한 기대 역시 완전한 목회자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예배 또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예배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보여주는 예배를 기대하지요. 그런 완전한 예배를 만들려면 방송국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목회자 뿐 아니라 그 주위에서 불필요한 것, 실수한 부분들을 삭제하고 완전한 부분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만은 인력들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런 식의 예배는 많은 다수를 위한 예배에서는 가능하지만 소수의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물론 중 대형 교회에서는 이런 방식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